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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다"… 최연재 동문(영어·경영 13), 美 UVA Wise 마케팅 교수 임용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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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방에 앉아 수강신청 창을 붙들고 있던 2015년 봄, 최연재 동문(영어학과·경영학과 13)이 장바구니에 담은 과목은 이상학 교수의 '마케팅원론'이었다. 마케팅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복수전공 필수과목인 데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막 부임한 교수님의 수업이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 정도였다. 어렵다는 소문에도 인기가 많은 강의라 수강신청에도 애를 먹었다.

 

  그런데 딸깍, 그 한 번의 클릭이 진로를 바꿔 놓았다. 마케팅이라는 학문에 빠졌고, 미국에서 마케팅 석사학위를 받겠다는 꿈이 생겼다. 꼭 10년이 지난 지난해 가을, 최 동문은 버지니아주립대학교 와이즈(UVA Wise) 경영경제학부 테뉴어 트랙 마케팅·애널리틱스 조교수로 임용됐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마냥 곧게 뻗어 있지만은 않았다.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캠퍼스(UIC)에서 마케팅 석사를 마치고 시카고의 마케팅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로 회사를 그만두고 예정에 없이 귀국해야 했다. 한국에서 다시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시기는 가장 힘들고 막막한 때였다. 그 시기를 돌아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급할수록 조금은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다"고. 그가 느리지만 단단하게 걸어온 길을 문답으로 들어봤다.

 

Q. 우리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여쭙고 싶습니다. 마케팅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케팅에 큰 관심이 있어서 수강한 건 아니었어요. 전공필수 과목이라는 이유로 신청했죠. 그런데 그 수업이 제게는 정말 좋은 자극이 됐어요. 이상학 교수님께서는 매 강의에 늘 열정적으로 임하셨고, 학생들을 대하실 때도 진심이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교수님께서 마케팅이라는 학문 자체를 애정하신다는 게 전해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학원이나 교수라는 건 꿈꿔본 적조차 없던 제가 "나도 저렇게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배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마케팅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브랜드 사이를 이어주는 '브리지(bridge)' 같은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셨던 것도 기억나요. 기업의 영리 활동을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점에 특히 끌렸어요. 시험 범위도 많고 어려웠지만 그 수업만큼은 잘해내고 싶어서 늘 밤을 새워 준비했어요.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던 기억이에요.

 

Q. 학부 시절에는 어떤 활동에 가장 열심이셨나요.

 

교내에서 열리는 행사들에 웬만하면 먼저 도전해보려고 했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분야라도 일단 문을 두드려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우리 대학이 화전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 갇혀 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학교 안에서도 크고 작은 유익한 행사가 정말 많이 열려요.

 

저는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했으니, 에어버스나 보잉 관련 대회처럼 이공계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 행사를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 싶어 망설일 수도 있었어요. 그래도 도전은 해볼 수 있는 거니까요. 당시 교환학생 때 만난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항공전자정보공학부 선후배들과의 인연으로 교내 행사에도 함께 참여하게 됐고,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기여하려고 했어요. 우리 대학이 매년 에어버스와 여는 학생 아이디어 경진대회인 '에어버스 101'에서는 3등을 해서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본사 견학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밖에 교외 활동이나 공모전도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면 우선 문을 두드려봤어요. 한글과컴퓨터 글로벌 마케팅 인턴, 매일경제 e신문 대학생 홍보대사, 페리에 코리아 대학생 앰배서더, 록시땅 코리아 대학생 서포터즈까지 캠퍼스를 벗어나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 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여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수업 사례를 준비할 때도 그렇고,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논문의 실무적 기여를 고민할 때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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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대학원 진학을 꿈꾸게 된 바로 다음 학기에 미국 노스다코타대학교(UND)로 1년간 방문학생을 가게 됐어요. 그때부터 미국에서 마케팅 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고, 그만큼 간절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찾아보려 했어요. 영어학 전공이었으니 영어학과 교수님들 오피스 아워(Office Hours·교수들이 정해놓은 공식적인 학생 면담 시간)에 찾아가거나 미리 메일을 드려 면담을 요청했고, UND에서도 수업을 들은 교수님들을 찾아가 대학원 진학에 대해 여쭸어요. 준비 과정에서는 토플뿐 아니라 GRE 점수도 필요했는데, 해외 경험이 거의 없던 제게는 정말 어려웠어요.

 

그런데 정말 막막했던 시기는 오히려 박사과정 지원을 준비하며 인터뷰 연락을 기다리던 때였던 것 같아요. 연구 경험이 많지 않아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어요. 코로나19로 석사 졸업 후 하던 일을 접고 급하게 귀국해야 했던 상황이라 더 그랬고요. 그때 이상학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관심 분야 논문들이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읽어나갔고, 이후 김진기 교수님의 지도도 받으면서 하나씩 준비해 나갔어요.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오히려 급할수록 조금은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어요. 당장 눈앞에 답이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쌓아가다 보면 결국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Q. 귀국 후 이상학 교수님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교수님의 뉴로마케팅 랩에서 뇌파를 활용한 실험 방법을 배웠어요. 당시 연구실에 있던 석사 후배들과 함께 실험을 진행하며 정말 많이 배웠고, 제가 스스로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교수님께서 많이 이끌어 주셨어요. 그 결과 한국광고학회에도 참여하고 KCI 등재 학술지인 광고학연구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어요.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관련 연구에 참여하며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배우고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경험도 했고요.

 

그 무렵에는 시카고에서 다니던 회사를 급하게 그만두고 예정에 없던 귀국까지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교수님과 연구실 덕분에 다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박사과정 지원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렇게 다시 준비한 끝에 세인트루이스대학교 국제경영·마케팅 박사과정에 진학해, 지난해 여름 학위를 마치고 가을부터 UVA Wise 강단에 서게 되셨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연구를 소개해 주세요.

 

저는 소비문화이론(Consumer Culture Theory, CCT)을 바탕으로 소비를 경제적 활동으로만 보지 않고, 소비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는 방식을 연구해요. 구체적으로는 소비자들이 물질적 또는 디지털 소유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며, 공동체적 관계와 소비 리추얼(ritual)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연구는 아무래도 박사학위 논문이에요. 지난해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디펜스는 잘 마쳤지만, 몇 년 동안 마음과 시간을 쏟아온 이 연구에게 '좋은 집을 찾아주기 위해' 지금도 한창 작업하고 있어요. 논문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적합한 저널을 찾아 투고하는 과정을 종종 그렇게 표현하기도 해요. 수집(collecting)이라는 소비 행동을 둘러싼 소비문화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소비 리추얼에 관한 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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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I 사용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의 대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요즘 학생들이 다소 간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과제나 그룹 발표에서 자신만의 의견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 수업 중에 자발적으로 질문하고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 역시 자극을 받아요. 특히 오피스 아워에 찾아와 하나라도 더 물으려 하거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을 보면 예전의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져요.

 

수업을 준비하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학생들이 이론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론이 왜 중요한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야 배운 내용을 실제 생활이나 실무에 연결해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래 활용돼 온 기업·브랜드 사례뿐 아니라 최근 사례도 함께 소개하려고 해요. 학생들이 공감하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요. 저 역시 새로운 사례와 연구를 꾸준히 찾아 읽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으려고 해요.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어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학창 시절을 보낸 학생들 가운데 협업이나 소통을 어려워하는 경우를 자주 봐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는 학생도 많아지고 있는데,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럴 때일수록 우리 한국항공대 후배들은 조금 두렵더라도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할 줄 알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응원해요.

 

Q.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어요. 무엇이든 자유롭게 경험하고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해 볼 수 있는 지금의 대학 생활을 열심히 누리고 즐기기 바란다고요. 좋은 학점을 받는 것만으로 좋은 학기를 보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좌절도 하고 여러 번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런 경험을 통해 결국 성장하게 되니까요.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모르겠거나 전공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걱정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해요. 오히려 그럴수록 천천히 여러 분야를 탐색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라고요. 학부를 반드시 4년 안에 끝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 진학을 비롯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면 좋겠어요. 넓은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도 어떻게 보면 이와 통해요. 소비 행동을 둘러싸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스스로를 초대해 경험하며 자아를 형성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연구하니까요. 앞으로도 한 소비자가 자신의 삶에서뿐 아니라 한 세대와 문화 속에서 주체적인 자아로 자리 잡아가는 모든 과정을, 소중하고 흥미롭게 바라보는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를 통해 마케팅 소비자행동 분야의 연구에 기여하고 싶고요. 

 

학생들에게는, 제가 이상학 교수님을 보며 꿈을 키웠던 것처럼 저 역시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교수가 되고 싶어요. 늘 열정적인 자세로 학생들과 소통하며,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수로 발전해 나갔으면 해요. 

 

제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동기가 되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학부 공부에서 그치지 않고 더 배우는 길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조언을 구하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이메일 ksa8cx@virginia.edu).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