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큰 맥락을 고려한 정책을 고민하는 사무관이 되고 싶습니다.”
박시영 동문(전자 및 항공전자공학전공 16)의 말투는 담백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단단한 진심이 느껴졌다. 올해 10월 5급 기술고시 통신직에 최종 합격한 그는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우리 대학 기획처장인 이재욱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잊혀진 ‘기술고시반’을 다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후배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를 만나 고시 합격까지 걸어온 길과 후배들을 위한 기술고시반 신설 제안을 들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동문님. 먼저 기술고시 합격을 축하드려요. 몇 년 만에 합격하셨나요?
A. 휴학하고 정식으로 공부한 건 4년, 네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습니다. 사실 작년에 거의 붙을 뻔해서 더 아쉬웠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해 1년만 더 해보자고 하고 다시 도전했습니다.
Q.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A.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드디어 탈출이다”였어요. 공대 친구들은 대부분 제때 취업하고,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회사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계속 비교가 되더라고요. 3년 차부터는 소속감이 없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고요. 그래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제 나도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겠다”라는 안도감이 가장 컸어요.
하지만 고시에 합격했다고 제가 대단하고 엄청난 성취를 했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저 실력을 쌓고 때를 기다렸고, 운과 시기가 맞아떨어졌을 때 합격했다고 생각했어요. 그 실력의 기초를 쌓는 데 한국항공대학교가 있었고요.
Q. 기술고시를 준비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A. 이 길을 처음 알게 된 건 신입생 때였어요. 당시 수능 이과 수험생 카페에서 취미로 과학탐구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술고시 최연소 합격자의 수기를 읽게 됐어요.
저는 삶의 의미가 “무엇을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경우엔 제가 소속된 집단—동아리든, 조직이든—에 문제가 있으면 그 원인을 고민하고 해결 방향을 찾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런 고민과 시도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이 뭘까 생각했을 때 공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부수적으로는 고용시장 변화에 대한 불안도 있었던 것 같아요. AI 자동화나 국제 정세 변화가 제 진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이 어렵다 보니, 공직의 안정성도 고려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Q. 기술고시 통신직은 어떤 일을 하나요?
A.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는 1차관실과 2차관실이 있는데, 통신직 사무관은 주로 2차관실 소속으로 배치돼요. 1차관실은 과학기술·R&D·국가연구개발 혁신 등 과학기술 전반을 담당하고, 2차관실은 통신·ICT·AI·디지털정책을 총괄합니다. 통신직 사무관은 보통 절반 정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발령을 받고, 그 외에는 국방부·특허청·행안부 등에 1명씩 배치되기도 해요.
Q. 동문님은 어떤 사무관이 되고 싶으신가요?
A. 하나의 문제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무보다는 숲을 보고 좀 더 장기적인 정책 결정을 하는 사무관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해요. 대학 때 동아리에서 활동할 때 제가 너무 ‘합리적 이유’만 강조하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놓쳤던 적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책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감정과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기적인 안목과 함께 사람들의 감정까지 세심하게 챙길 수 있는 사무관이 되고 싶습니다.
Q. 고시 공부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2023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두 번째 시험에서 2차 탈락을 했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졌거든요. 그때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처음으로 학교 학생생활상담소를 찾아갔어요. 거기서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당시엔 내가 왜 고시를 선택했을까 후회를 좀 많이 했어요. 그런데 나를 이해하고 나니 내 선택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어요.
Q.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A. 저도 힘들 때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일어나는 것조차 싫을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작은 목표 설정하기’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눈을 뜨면 일단 일어나자, 일어났으니 씻자, 일단 버스를 타자…. 이렇게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루다 보면 어느새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거죠.
목표가 클수록 성공의 단위를 작게 쪼개야 버틸 힘이 나요. 이때 중요한 건 내 마음속의 이상적인 수험생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거예요. 힘든 시기일수록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스스로 작은 성공을 인정하면서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다는 감각을 챙기는 데 집중해야 해요.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 어느새 실력이 향상되어 있거든요.
Q. 공부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했나요?
A. 저는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에 특별한 재능이 없었어요. 그래서 문제풀이 양을 늘리기보다 적은 양을 풀더라도 제 풀이 습관을 제대로 분석하는 쪽으로 공부 방향을 잡았어요. 통신직은 컷이 낮은 편이라 1차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제가 빠르고 쉽게 풀 수 있는 문제 유형과 오래 걸리고 잘 못 푸는 문제 유형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선구안’이라고 합니다), 시험장에서의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어요.
2차 전공과목 시험은 기출문제 답안이 공개되어 있지 않고 정보도 부족해서 처음에는 공부 범위를 설정하는 것부터가 어려웠어요. 자료나 정보가 부족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해결됐고, 챗GPT를 활용해 합격자 답안과 제 답안을 교차 검증하는 식으로 공부에 활용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2차에서는 통신직 시험의 세 과목이 큰 틀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해하면 공부가 한결 재미있어져요. 전자회로 블록을 이어 붙여 통신기법 구현을 위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신호가 전송선·안테나를 거치며 나타나는 효과를 전자기학으로 설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별 개념을 전체 시스템 안에서 이해하려 했어요. 핵심은 어떤 과목이든 현재 공부하는 부분이 큰 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 ‘시험의 합격 컷 넘기기’가 목표이기 때문에, 이렇게 익힌 개념을 바로 문제풀이에 적용해 보는 노력이 필요해요. 기출문제 스타일에 맞는 예제·연습문제를 우선적으로 풀어보며 어렴풋이 이해한 개념을 빠르게 적용해 보는 공부 방식이 유효했다고 생각해요.

Q. 이재욱 교수님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A. 2017년 2학년 때 ‘전자기학’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찾아뵈었어요. 기말고사 성적이 궁금해서 갔던 건데, 교수님이 학생들이 왜 전자기학을 어렵게 느끼는지 물어보시면서 긴 대화를 나누게 됐죠. 그때 학생을 진심으로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인상이 오래 남아서 이후 종합설계에서도 ‘무선충전’을 주제로 교수님께 지도를 받았어요. 제가 최고 성적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교수님 덕분에 전자기학을 이해하는 출발점을 잘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시험에서도 전자기학 과목이 합격에 큰 도움이 되어서 합격 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인사를 드리면서 “후배들에게는 좀 더 체계적인 도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말씀드리게 되었고요.
Q. 학교에 기술고시반을 다시 만들자고 제안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저희 직렬은 초시에 붙는 케이스도 꽤 있고, 보통은 2년 정도면 많이들 합격해요. 그렇게 합격이 빠른 건 대부분 고시반이 있는 대학 출신들인데, 아무래도 전해져 내려오는 자료가 많고 공부하는 뼈대가 잘 잡혀 있어서 제 수험 과정과 비교해봤을 때는 시작 단계에서 시행착오가 적어 보이더라고요. 반대로 그런 체계가 없으면 저처럼 처음에는 헤맬 수밖에 없고요.
제가 기술고시반을 제안한 건 이 길을 고민하는 후배들이 처음부터 덜 헤매고 방향을 빨리 잡을 수 있었으면 해서에요. 제가 멘토로 참여해서 스터디도 조직해주고, 공부 방향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부분을 학교와 논의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리게 됐습니다.
Q. 기술고시반이 다시 만들어지면 어떤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가장 현실적인 건, 타 대학 기술고시반처럼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춰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항공‧경영대학에서 운영하는 전문자격시험 준비반 정도의 기본적인 지원이 기술고시반에도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1인당 50만 원 한도로 자격시험 응시료, 교재비, 교육비를 지원해 주고, 공부 공간을 제공해 주는 정도요. 지도교수님을 배정해 주는 것도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장학금 지급 규정 시행세칙’의 전문자격시험 준비반 장학금 성적기준(직전학기 성적 3.5 이상)을 조금 더 유연하게 운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평균 평점 3.5 기준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진 않아요. 다만 어떤 학생은 특정 과목 역량이 좋다든지, 처음부터 기술고시를 목표로 관련 과목에 집중해 온 경우도 있을 수 있어서 성적 하나만으로 지원 자격이 갈리는 구조보다는, 고시에 대한 의지와 준비 정도를 함께 볼 수 있는 방식이 부분적으로라도 병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개념 자료, 기출 답안, 모의고사 자료를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공유하는 것이나 멘토링 같은 측면이에요. 지금은 후배분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5급 기술고시 통신직 설명회/준비반 수요조사’도 진행하고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참여해 주시면 됩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pPgXi2F_Omk2W2bgPIssnIMsnJf4buHC0lC1acAGIebsaCw/viewform
Q. 왜 이렇게까지 본인의 시간을 들여 기술고시반을 만들려고 하시나요? 합격 후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편히 쉴 수도 있었을 텐데요.
A. 제가 뭔가 특출나게 잘해서 합격한 게 아니라, 우리 대학에서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생들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교수님들도 절대 역량이 부족하지 않아요. 단지 처음에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시행착오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중간에 헤맸던 1년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조금만 옆에서 방향을 잡아줬다면 훨씬 빨리 끝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은 그런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앞으로 한국항공대 출신 기술고시 합격자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걸 시작하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A. 에브리타임 보면 입결(입학 성적) 얘기로 논쟁이 많잖아요. 근데 그런 건 대학 뿐 아니라 그 글의 작성자에게도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 같아요. 막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됐으니, 그 순간 자신의 정체성이 학교의 당시 입학성적 서열 따위로 결정된듯한 그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입학을 이미 한 이상 학교 이름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노력하느냐, 예요. 후배분들이 이런 측면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한 부분들은 자신의 한계를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발선과 목표까지의 거리를 알기 위해 ‘참고 자료로써만’ 활용하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자기 객관화’는 무의미한 입결 논쟁이 아니라, 여기서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으면 좋을지 열심히 찾아보는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