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우리 대학에서 탄자니아 대통령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6월 4일부터 5일까지 국내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부제=함께 만드는 미래 : 동반성장, 지속가능성 그리고 연대)’ 참석을 위해 방한한 사미아 술루후 하산 대통령은 이날 우리 대학 명예 항공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향후 항공 전문가 양성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학위수여식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데는 이진상 석좌교수의 힘이 컸다. 지난해 우리 대학에 임용된 이진상 교수는 1994년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대학교 강단에 서면서 처음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이래 수십 차례 아프리카 각국을 오가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아프리카 전문가’다. 다양한 개도국 관련 저서 및 학술활동, 강의‧세미나‧컨퍼런스‧워크숍에 참여했고, 한국아프리카학회장을 4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맞아 방한한 탄자니아 대통령 측에 우리 대학 방문을 제안한 것도 그였다.
이진상 교수를 만나 앞으로 우리 대학이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큰 그림을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 반갑습니다. 홈페이지 기사를 보실 동문님들과 학생들을 위해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이진상 석좌교수입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교육, 과학, 기술 분야의 개발도상국 경제 개발에 관련된 일을 해왔고,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경제 정책 입안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려대 국제대학원, 한국뉴욕주립대 등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각 대학이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 케냐, 가나 등 아프리카 국가 및 현지 대학과 교류하는 데 필요한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항공대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이제 1년이 되어 갑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신 교수님들과, 생기 넘치고 미래지향적인 학생들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항공대는 최첨단 산업인 항공우주분야의 종합대학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도 더 잘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가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탄자니아 대통령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은 우리 대학이 해외 국가지도자에게 처음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행사라는 점에서 중대한 이벤트였는데 성공적으로 잘 치러졌습니다. 탄자니아 대통령은 어떤 계기로 우리 대학을 방문하게 되었고, 앞으로 저희 대학과 탄자니아와의 교류협력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게 되나요.
A.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은 아직 항공산업의 초기 단계입니다. 공항, 항공기 등 인프라는 물론이고 조종사, 관제사, 정비사 등 전문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지요. 하지만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의 영봉이라고 불리는 ‘킬리만자로’와 경기도 면적에 버금가는 세렝게티 및 옹고로옹고로 국립공원을 품은 넓은 국토를 가졌고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입니다. 이에 우리 대학은 탄자니아를 아프리카 지역 교류협력의 허브로 삼아, 앞으로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각국과의 항공전문인력 양성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탄자니아 정부는 항공산업의 발전을 통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항공분야 훈련을 위한 학생‧교원 등 전문인력의 교류로 시작하여 여러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은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단계에 있지만, 이를 통해 아프리카 전역의 항공산업 발전을 앞당기는 동시에 우리 대학만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입니다.
Q. 우리 대학이 아프리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이 궁금합니다.
A. 탄자니아가 근래 항공기 16대를 도입했는데 정작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조종사, 관제사, 정비사, 승무원 등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해요. 대한항공 기준으로 항공기 1대를 신규 도입할 때마다 필요한 조종사만 24명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하겠어요. 문제는 탄자니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에 이런 전문인력을 교육할 기관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에티오피아에 교육훈련 기관이 있으나 수준이 낮은 편이고, 해외로 유학을 보내려니 유럽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우리 대학은 앞으로 이런 어려움을 겪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항공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훈련 기관을 설립‧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혹은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 현지에 우리 대학의 분교를 만들어 우리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도 있고요.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뜻처럼 아프리카의 교육에 널리 기여하는 것이지요.
Q. 교수님이 처음 아프리카에 뜻을 품게 되신 건 언제였나요.
A. 제 이력이 다소 특이해요(웃음). 공고를 졸업하고 포스코 등의 회사에서 12년을 일한 후에 만 서른 살에 영국 유학을 가서 학부부터 경제학을 공부했지요. 당시 지도교수가 영국인이었는데, 어느 날 에티오피아 경제기획원 장관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에티오피아 정부의 ‘수석 경제고문’으로 가게 된 겁니다. 교수님이 저에게 “여기 있겠느냐, 나와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을 때 함께 가겠다고 답하면서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는 사람이고, 어려서부터 꿈이 나라가 더 잘 살도록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1994년에 에티오피아에서 경제학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도입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에티오피아 정부의 경제 정책 입안에 도움을 주면서 에티오피아가 성장하는 걸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Q. 아주경제에 ‘이진상의 인사이드 아프리카’라는 제목으로 정기칼럼을 기고하고 계신데요, 이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어떤 메시지인가요.
A. 원래 코로나19 이전에 연재하던 칼럼인데 올해부터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제 칼럼은 아프리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칼럼입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가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아프리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Q. 교수님이 쓰신 칼럼을 보면 “아프리카와 우리나라는 상호보완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A. 비행기 위에서 아프리카를 내려다볼 때마다 그 넓은 땅이 탐이 납니다. 끝없이 넓은 땅이 모두 개간되지 않은 초원이지요. 아프리카의 전체 면적은 미국의 3배에 달하고, 사하라 사막은 미국 본토 면적보다도 더 넓지요. 사하라 사막에 벨기에 정도의 면적의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면 아프리카 전체 전력을 공급하고도 남는다고 하지요. 수량이 풍부한 나일강, 콩고강, 니제르강의 수력 발전 잠재력은 태양광 이상이라고 하고요.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도 풍부합니다.
여기에 인구는 또 어떤가요. 아프리카 인구는 14억으로 이미 중국과 인도의 인구까지 추월했습니다. 이 중 30세 미만 젊은 층 인구가 70%를 차지하고 14세 미만은 40%입니다. 즉,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뜻이지요. 아프리카의 대륙 면적, 부존 자원, 인구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아프리카의 개발 잠재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교육입니다. 아프리카의 15세 이상 인구 문해율은 67.4%로 인구의 약 3분의 1이 글을 읽지 못합니다. 관련 인프라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요.
반면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의 자원 빈국이지만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통해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뤄냈지요. 여기에 높은 교육열로 인적자원을 개발하여 고도의 기술력을 갖춤으로써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고요. 이런 우리나라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아프리카와의 교류협력을 확대한다면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프리카에게 없는 ‘기술과 교육’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에게 없는 ‘자원과 노동력’이 아프리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호보완적이라고 하지요.
Q.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위해 방한한 아프리카 정상의 인터뷰 기사에는 우리나라를 산업화의 모델로 삼았다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A. 우리나라가 ‘무’에서 ‘유’를 이뤄낸 국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란 말처럼 단 30년 만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그런 우리나라가 최초로 개최한 아프리카 정상과의 다자회담입니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대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100억 달러까지 확대하고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약 140억 달러의 수출금융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베트남의 과거 사례를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아프리카는 베트남보다 국토 면적도 넓고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하지만 그건 너무 먼 미래일 수도 있겠네요.
A. 맞습니다. 아직은 먼 미래죠(웃음). 제가 1955년생이니 올해 만 69세입니다. 저는 아프리카 발전을 위한 ‘시금석(금의 순도를 조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암석으로, 금조각을 이 돌 표면에 문질러 나타난 흔적의 빛깔로 금의 순도를 결정한다)’일 뿐이고, 후배들이 제 바통을 이어받겠지요. 그날을 위해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항공대를 제 마지막 일터로 생각합니다. 한국항공대에 있는 동안에 한국항공대가 아프리카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