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다. 매년 줄어드는 학령인구 속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학사구조 개편으로, 특성화로, 외국인 학생 유치로, 저마다의 생존을 모색 중이다. 아직도 수도권 대학은 강 건너 불구경이라지만, 지역 대학은 온몸으로 그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매년 떨어지는 신입생 충원율이 위기의 바로미터다.
8월 8일 취임식을 갖고 전주비전대 제17대 총장에 취임한 우병훈 동문(항공통신정보공학과 84/항공통신정보공학과 석사)은 오래전부터 ‘지속가능한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대학 내·외부에 강조해왔다. 1999년부터 전주비전대에 재직하며 입학처장, 기획처장, 대학혁신본부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두루 역임한 그는 ‘당장의 평가를 위한 대학경영보다 미래가 보장되는 대학경영이 되어야 한다’ 믿음으로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왔다고 했다. 그 믿음은 대학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왔다. 위기의 시대, 무거운 책임감으로 리더의 자리에 선 우병훈 총장을 서면으로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총장님. 먼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한국항공대 구성원들과 홈페이지를 보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A. 저는 1984년에 한국항공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 학과 대표만 네 번을 했고 총학생회 활동과 대의원회 의장 등을 지내며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졸업 후에는 육군 학사장교로 3년간 나라를 위해 봉사하면서 병사들과 동고동락했고요. 이때 모은 돈으로 석사 학위 과정도 마쳤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고등기술연구원(高等技術硏究院,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 IAE)에 입사해 5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무선 LAN 설계, WLL 시스템 설계, 3세대 이동통신 모뎀칩 설계 등의 과제를 수행했지요. 그러나 재직 중 IMF 금융 위기를 맞으며 1999년 3월에 지금의 전주비전대학교로 이직했습니다.
전주비전대에선 정보통신과 교수로 처음에는 컴퓨터 관련 교과목을 가르치다가 이후에는 이동통신, 안테나공학 등 무선통신 교과목의 이론과 실습 과목을 강의했습니다. 2019년부터 자동차과에서 전기전자 시스템 부분과 자동차 센서, 자동차통신 등을 가르쳤고, 2023년에는 미용건강과 소속으로 학생 인성교육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2004년부터 입시홍보팀장, 주문식사업단장, 입학관리처장, 기획처장, 대학혁신본부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맡았고요.
Q. 말씀하신 대로 여러 보직을 역임하는 동안 대학의 미래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갖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경험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무엇일까요?
A. 현재의 학령인구 감소나 대학의 위기는 이미 2007년 입학처장 시절에 인지했었습니다. 당시 2022년 이후 대학 입학자원이 부족하다는 통계가 처음으로 발표됐지만 대학 구성원 중 누구 하나 이 부분에 대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연구원 재직 시절 IMF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대학의 위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후로는 모든 업무에 임할 때 2022년 이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특히 2015년부터 기획처장을 역임하면서부터는 대학구조조정, 조직개편, 임금체계개편 등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는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그때 조직의 리더십은 조직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학교 일을 할 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의 대학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습니다.
Q. 보직교수 당시 전국 전문대학협의회에서 하신 강연마다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이 ‘지속 가능한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역 전문대학으로서 ‘지속가능한 대학’이란 어떤 대학일까요?
A. ‘지속 가능한 대학’은 제가 오래전부터 대학 구성원들과 대학 관계자분께 강조해 온 말입니다. 현재의 평가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대학경영보다는 미래가 보장되는 대학경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5년 후, 10년 후에도 학생들이 선택하는 대학’,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대학’이 지속 가능한 대학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이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하며 지역사회의 변화, 대학정책의 변화, 예측할 수 있는 산업분야를 반영한 대학 경영과 대학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 하나, 대학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므로 ‘소비자인 학생과 산업체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대학’이 지속 가능한 대학이라 생각됩니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글로컬대학 30, 대학통합, RISE 사업, 지역사회와의 상생’ 등도 모두 지속 가능한 대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대학을 위해서는 대학이 먼저 준비하고 빠르게 변화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의 구성원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Q. 대학을 둘러싼 위기 속에서 늘 ‘정확한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는데요. 리더로서 정확한 현실 인식이 올바른 방향 설정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구성원들을 어떻게 독려해야 할까요?
A. 먼저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와 직원에게 대학의 현실을 정확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제가 기획처장을 하는 동안 1년에 네 번 이상 전체 구성원들에게 대학 현황을 설명한 것 같습니다. 대학 예산 수립 시, 대학 결산 보고 시, 2학기 추가경정예산 수립 시, 중요한 정책 변화 시에 말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학령인구의 변화, 우리 대학의 신입생 유치 상황, 재학 재정의 건전성입니다. 이런 부분을 전체 교직원이 공유한다면 대학의 미래를 위한 정책 수립과 위기 극복은 가능할 것입니다.
구성원들을 독려하기보다는 대학 본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준비하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함께 대학의 위기를 이겨 나갈 것입니다.
Q. 위기 속에 선 리더는 다른 구성원들보다 멀리 내다보기 때문에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리더가 구성원과 한마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리더는 구성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학처장 시절 많은 학과를 통·폐합 하고 정원을 조정했습니다. 평생 들을 욕을 그때 다 들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선배 교수님들로부터 “애썼다”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구성원이 한마음이 되려면 리더가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정하여야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은 규정과 정책으로 진행하여야 합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대학 미래를 위해 제도적 장치와 규정을 정확히 만들어 놓으면 대학의 미래는 보장된다고 확신합니다.
Q. 전주비전대는 2021년 기준 취업률 81.1%로 전국 전문대학 중 1위(졸업생 1,000명 이상 대학 중)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학 홈페이지에도 ‘입학이 취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이고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A. 전주비전대는 1976년 공업전문대학으로 출발했으며 지금도 공업계열에 특화된 대학입니다. 전라북도에 유일하게 공업계열이 온전히 남아있는 전문대학이라고 할 수 있죠. 2010년 이후 대학의 생존을 위해 학생 취업에 전념해 취업명품대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학과 교수평가는 취업률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대학 교육은 자격증 취득과 취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특성화고-전주비전대학-산업체-지자체 지원이라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학생을 교육하고 지원합니다. 전북지역의 대부분 산업체에 상당수 동문이 재직하고 있어 학생 실습과 취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1,000개의 가족회사를 학교와 학과에서 관리하며 유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저희 대학의 강점입니다. 전교생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필수적으로 작성하도록 하여 개별 지도를 하고 있고, 전담 직원(4명)이 학생들을 관리합니다.
Q. 전주비전대는 지난 5월 교육부 ‘글로컬대학 30’ 사업 공동 신청을 위해 전주대, 예수대와의 통합 계획을 밝혔습니다. 통합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상되는 파급효과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3개 대학의 통합은 매우 이례적인 대학통합인 데다, 같은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지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전주대는 일반 대학으로 지역 내에서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수대는 70년 정통의 명문 간호대학입니다. 저희 전주비전대는 47년 전통의 공업계열 특화 전문대학이고요. 전주대와 전주비전대는 같은 재단의 대학으로 오래전부터 통합 논의가 있었으며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두 개 대학의 통합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대는 재단이 다르지만 3개 대학 모두 같은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주대와 예수대학의 통합은 간호과 한 개 학과의 통합으로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전주비전대와의 통합은 2027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 3월 전산 통합 작업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전문대의 특성(2년제)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일반대학과 통합하므로 다양한 인재 양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3개 대학이 통합되면 전문대의 현장 기술인력 양성시스템을 일반대학에 접목해 전문학사/학사/석사/박사 등 다양한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실질적인 종합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물론, 간호·보건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서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Q. 임기가 다했을 때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이번 총장 공모를 준비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진정 대학을 사랑하며 학교생활을 하였는지, 사심 없이 학교만을 위해 일했는지, 대학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 돌이켜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총장 임기를 마치고 후배 교직원들이 ‘진정 학교를 사랑했던 총장’으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학교를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Q. 모교인 한국항공대학교를 떠올리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A. 대학 동기들을 만날 때마다 떠올리는 추억들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기차 소리로 인해 수업 중 1시간에 두 번은 쉬어야 했던 기억, 비행실습으로 교수님 강의내용을 듣기 힘들었던 기억, 좁은 연구실에 옹기종기 모여 교수님과 대화하던 기억…. 모두가 열악했던 교육 시설과 환경에 대한 기억이지요. 그래도 그 시절 활주로에 앉아 막걸리 마시며 인생을 논하고 나라와 대학의 미래를 걱정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항공대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A. 자랑스러운 한국항공대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세요. 그러나 지금 그것을 해야 할 시기인지 깊이 고민하세요. 내게 주신 창조주의 재능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은 최선을 다해 성실히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선·후배님들! 지금의 저를 있게 하신 분은 조성준 교수님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성실하시고 학생들을 사랑하시고 염려 해주셨지요. 교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직장생활이며 학생지도며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도 우리 학교 동문이십니다. 저는 항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행복합니다. 항대인의 자부심만 있으면 자신의 자리에서 우뚝 설 수 있을 겁니다. 서울 출장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학교를 방문합니다. 아는 이도 없고 캠퍼스도 달라졌지만 송골매만 보아도 힘이 납니다.
교직원 여러분! 지난 70여 년 동안 수많은 교직원 선배들이 만들고 지켜온 한국항공대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먼 훗날 손자들의 손을 잡고 내가 근무했던 대학이라고 소개할 수 있도록 지금 무엇을 할지 고민하시고 최선을 다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