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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태양은 또 다른 이유로 떠오른다” 이승세 SPACE TECHNOLOGY 회장(항공경영 80)

  •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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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를 펼친 그는 고민에 빠졌다. 이 많은 나라 중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 땅은 어디일까. 지도 위를 훑어 내려가다가 인도양 한쪽 끝의 섬나라에 눈이 갔다. 1만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 전 세계 인구 4위의 인도네시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에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그저 가보자, 라고 생각했다. 1988년 10월,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은 그렇게 낯선 나라, 인도네시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났다. 중학교 때 처음 전기가 들어왔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 청년은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다. 바로 이승세 인도네시아 SPACE TECHNOLOGY 회장(항공경영학과 80)의 이야기다. 

 

이승세 회장은 인도네시아 전력청(PLN)에 전력을 공급하는 독립발전사업자(IPP)이자 인도네시아 현지에 발전소를 세우는 건축사업자(EPC)로서 지주회사인 SPACE TECHNOLOGY와 자회사인 MDT 등의 회사를 경영한다.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거래 비중이 60%를 차지할 만큼 현지에서도 영향력 있는 기업인이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29일 부인 성경미 여사, 영애(令愛) 이소은 씨 등 가족, 인도네시아 Jakarta Tax Consulting 대표인 이승렬 동문(항공경영학과 86)과 함께 모교를 찾았다. 이날 이승세 회장은 우리 대학 개교 이래 개인 기부자 누적기부금액 중 역대 최대 규모인 10억 원을 기부했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그저 모교를 위해 써달라는 말과 함께. 

 

귀한 막내딸의 대학 졸업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모교에 들러 발전기금 기증식에 참석했다는 이승세 회장을 만나 지나온 삶과 기부에 뜻을 품게 된 계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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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인 MDT가 운영하는 화력 발전소 (사진=MDT 홍보 영상 캡쳐)

 

안녕하세요, 회장님. 이렇게 모교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허희영 총장 및 학처장단과 함께 학교 곳곳을 둘러보셨는데요. 오랜만에 방문하신 모교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승세 회장=사실은 5년 전에 한국에 왔다가 집사람이랑 둘이서 잠깐 들렀었어요. 그때 정말 깜짝 놀랐었죠. 예전엔 학교가 철길 건너에 있었고 캠퍼스가 황량했는데, 다 바뀌었어요. 오늘 여기저기를 모두 둘러보니 또 반갑네요. 제 청춘이 머물렀던 장소니까요.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로 나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이승세 회장=제가 대학교 3학년 2학기에 창업을 했다가 망했어요(웃음). 졸업을 하려고 보니 빚도 있고 해서 일반적인 월급쟁이 생활로는 답이 안 나오겠더라고요. 그래서 해외로 나갈 결심을 했지요. 지도 펴놓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인도네시아가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엔 중국이나 베트남이 공산국가라 어렵겠구나, 생각했던 거지요. 

 

형제 중 여섯 째인데 형제들끼리 하던 계모임 곗돈을 빌려서 1만 달러를 만들어 가지고 곧장 인도네시아로 날아갔어요. 그때는 인도네시아로 가는 직항편도 없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오죽하면 길거리에서 한국 사람 같은 사람만 보면 반가워 서로 통성명을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그곳에 정착할지 말지에 확신이 없었어요. 하루는 찌레본이라는 공업도시에서 CEO 비서 모임이 있다고 해서 다녀오는데, 밤 12시에 찌레본에서 수도 자카르타로 오는 길에 화물 트럭들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제 차 앞으로 지나가는 트럭 수를 세어보니 500대가 넘더라고요. 순간, ‘아, 여기는 경제가 도는구나’ 싶었어요. 그때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기로 결론을 내렸지요. 

 

1980년대에 대학 재학생으로 창업을 하셨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와요. 어떤 사업을 하셨나요. 

이승세 회장=여행사를 하나 만들었어요. 독특한 사업 아이템이었는데, 신혼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삼성, LG 가전제품에 대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었지요.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다 보니 진입장벽이 높아서 결국 망했어요. 그래도 그 실패에서 배운 게 두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서비스업은 망하면 종이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웃음). 

 

돌아보면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독특했어요. 엄청 튀는 학생이었지요. 공부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해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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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는 이승세 회장 (사진=MDT 홍보 영상 캡쳐)

 

아무것도 없는 낯선 타국에서 회사를 어떻게 키워오셨을지 궁금합니다. 

이승세 회장=처음 인도네시아에 가져간 돈 1만 달러는 집 구하고 차 할부금 내고 팩스 하나 들이고 나니 똑 떨어지더라고요(웃음). 그날부터 산업기계부품 판매를 시작했어요. 당시 인도네시아는 인프라가 부족해서 마진율이 높았고 고마운 분을 만난 덕분에 회사가 점차 정상화되기 시작했지요. 이후에 대우중공업 대리점을 하면서 회사 규모를 계속 확대했어요. LPG 용기를 생산해 정부에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인도네시아 국영 전력청(PLN)에서 발전 사업에 대한 입찰이 있다는 걸 알았고, 발전소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정부에 판매하는 독립발전사업자(IPP)와 발전소를 세우는 건축사업자(EPC)로 사업분야를 넓히게 되었어요. 보통 IPP가 EPC에게 발전소 건설공사를 맡기는데, 저희 회사는 두 가지 역할을 다하고 있어요. 

 

제 기업 경영의 모토는 ‘영원한 사업 아이템은 없다’는 거예요. 기업은 마치 살아있는 동물과 같아요. 시기와 상황에 맞춰서 경제성을 따져보고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고 바꿀 건 바꿔야 하죠. 지금은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력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일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화력 발전소의 열원을 친환경 바이오매스로 전환해볼 계획이에요. 어쩌면 제 다음 세대가 기업 경영에 인공지능을 도입할 수도 있고요. 한국에서 인공지능 개발자로 일하는 제 아들은 아빠가 하는 사업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그 모든 도전을 해내시면서 늘 마음에 담고 살았던 좌우명 같은 것이 있으실까요. 

이승세 회장=특별한 좌우명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직원들 가운데 외국인이 많으니까 영어로 “Tomorrow’s sun rises for another reason(내일의 태양은 또 다른 이유로 떠오른다)”이라고 독려할 때가 있지요. 내일은 새로운 일이 있을 테니 오늘 일은 오늘 끝내자, 는 뜻인 거지요. 

 

이승렬 대표=사실 형님이 인도네시아에서 ‘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자)’으로 유명해요. 평일 밤 늦게까지 일하는 건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일하세요. 스스로를 ‘이 대리’라고 부르실 정도지요. 회사에 가보면 기다란 테이블에 서류가 끝에서 끝까지 높이 쌓여 있어요. 그 모든 걸 직접 보고 결재를 해요. 그렇게 출력해서 보아야 업무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씀하세요.

 

가족분들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과 아버지를 지켜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성경미 여사=남편을 보며 참 감사한 게 아이들이 아빠를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거예요. 집 밖에서나 집 안에서나 고루 존경받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은 아빠가 뭘 한다고 해도 무조건 믿고 지지해요.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서부터 저랑 아이들만 서울에서 지내고 남편은 인도네시아에서 지내기 때문에 이번에 모교에 기부한다는 사실도 페이스톡으로 들었어요. 사전에 가족과 상의하지 않고 “내가 이번에 학교에 기부를 10억 하기로 했다”라고 전화로 이야기한 거죠(웃음). 저는 1초 정도 “응?”하고 놀랐는데, 저희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아빠, 너무 대단하다. 멋지다” 박수를 치더라고요. 

 

사실 남편은 사치를 안 해요. 자기한테 쓰는 돈이 없어요. 오늘 입고 온 양복도 아들 양복이 몸에 맞아서 입고 온 거고, 구두도 어제 처음 샀어요(웃음). 늘 운동화만 신고 다녀요. 

 

이승세 회장=(입고 온 옷을 만지며) 이 정도면 충분하지요. 사업에 성공했다고 갑자기 옷을 바꿔 입을 순 없는 거 아닌가요(웃음). 

 

그렇게 검소하신 회장님이 이번 기부를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승세 회장=(이승렬 대표를 가리키며) 인도네시아에서 이 친구와 인연이 닿아서 같이 학교 홈페이지 뉴스를 읽어보는데 반갑더라고요. 대학 시절에 조교로 강의도 하셨던 항공경영학과 4년 선배가 총장님으로 계신 것도 신기했고요. 그런데 홈페이지에 나온 발전기금 내역을 보니 참담한 기분이 들었어요. 타 대학에 비해서 발전기금 누적금액이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부를 하기로 결심한 데는 1초도 안 걸렸어요. 다음 날 아침에 곧바로 10억을 기부하겠다고 이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지요. 

 

기부금의 사용에 관해서 갖고 계신 바람이 있을까요. 

이승세 회장=기부금은 학교에서 알아서 잘 써주세요. 나중에 더 기부하게 되면 그때는 용도를 정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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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 총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이승세 회장과 부인 성경미 여사, 영애 이소은 씨

 

마지막으로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이승세 회장=후배들에게는 “눈을 크게 뜨고 전 세계로 시선을 돌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기회가 있다면 젊을 때 해외에 나가서 길게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바깥세상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요. 단, 진취적인 것은 좋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르단 건 잊지 말고요. 

 

이승렬 대표=그래도 스스로 부딪혀 봐야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이승세 회장=(이승렬 대표에게) 그런가? 그럼 실패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왕이면 젊은 날에(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