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금

“기부란 내가 가진 것을 나눠 쓰는 것” 선진선 대표이사

  • 2015-12-23



  농지 사이로 난 흙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시골 동네였다. 선진선(61) 대표이사는 흙길 위로 무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끌며 우리를 맞이했다. 직접 재배한 무라고 했다. 농지 한 가운데 세운 ‘농막(농지에 설치하는 가건물)’에서 건네받은 따뜻한 커피 한잔과 직접 구운 군고구마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건설업체 대표이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달리 소탈한 모습에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선진선 대표이사는 우리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인 CEO아카데미(책임교수 허희영)에서 총동문회 초대회장을 거쳐 현재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올해 강의동 및 제2생활관 건립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했으며,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 장소가 농막이라고 해서 놀랐는데, 와보니 참 아늑한 공간이네요. 난로랑 장작이랑 직접 캐신 고구마도 있고요.
그렇죠? 여기는 제가 퇴근하고 나서 책보고 회사 일도 구상하는 ‘휴식처’ 같은 곳이에요. 집사람이나 친구들이 와서 고기도 굽고 밖에 채소도 키우고요. 수확한 작물들은 가족, 친척들이랑 나눠 먹지요.


취미로 농사 지으시는 걸 보면 고향이 서울은 아니셨나 봐요.
논산이 고향이에요. 논산서도 오지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으니까요. 참 가난했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서울 올라와서 고생 엄청 했지요. 없이 살아본 경험 때문에 지금 제가 가진 걸 조금 나누는 것뿐이에요.


대표님께선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여러 도움이 필요한 곳에 후원과 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장학사업도 꾸준히 해오셨고,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에게 쌀, 연탄도 기부하셨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복도 맞춰주신다고요. 장학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어렵게 공부할 때 장학사업을 하시는 분께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장학사업을 시작했고, 그게 올해로 15년쯤 되었어요. 로타리클럽을 통해 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하고요. 매년 전국에서 열 명 정도 뽑아 장학금을 지원해요. 공부 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되, 1순위는 부모가 안 계신 학생들, 2순위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로 정해두고 있어요.


장학사업을 하시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셨겠어요.
(자랑스러운 얼굴로) 제가 도운 학생 중에 ‘하늘’이란 아이가 있는데, 이번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어요. 학교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던 아이라 저는 기숙사비랑 생활비를 지원했었죠. 이 아이가 가끔 편지가 오는데 거기에 ‘평생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저도 꼬박꼬박 답장을 쓰죠. 또 검사가 된 아이도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와요. 결혼할 사람도 데리고 왔고요. 그럴 때 참 뿌듯해요.
 

 



학생들이 아들 같고 딸 같겠어요.
하하하. 제가 아들딸이 많네요. 한 서른 명쯤 되려나요. 마음이 참 든든해요. 학생들끼리 서로 모임도 가져요. 연말 모임 있으면 저도 초대 받아서 가요. 얼마 전에도 다녀왔네요. 자식 같고 제자 같은 아이들이에요.


학생들이 대표님처럼 훗날 장학사업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시나요.
(장학사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죠. 하지만 아이들한테 강요할 순 없는 거니까. 하늘이 같은 경우에는 ‘나도 반드시 장학사업을 하겠다’라고 책상 앞에 써 붙여 뒀다고 하더군요(웃음).

올해 강의동 및 제2생활관 건립기금에 큰 힘을 보태주셨어요. 어떤 바람을 가지고 건립기금을 기부하게 되셨나요.
학교에 갖는 바람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학생들이 그 안에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 이상의 보람은 없을 거 같아요. 생각만으로 뿌듯해요. 한국항공대에 바라는 점이라면 학교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하는 거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총장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요.


사업을 하시면서 힘든 순간은 없으셨나요. 그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부도를 맞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6~7년 전에 종합건설사가 부도가 나면서 저희도 크게 휘청거린 적이 있어요. 다행히 채권자들이 좋은 분들이라 잘 수습할 수 있었지만, 당시엔 크게 좌절을 했었지요. 절에 가서 며칠씩 머물며 마음을 다스렸어요. 스님이랑 마주 앉아서요. 그래도 그때도 기부는 계속했어요. 학생들은 ‘배워야 하니까’요. 부도났을 때 마침 전화가 왔는데, 차마 못준단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빚을 내서 장학금을 줬어요.


어려운 상황에서 기부를 한다고 하면 가족들도 좋아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괜찮으셨나요.
가족들은 제가 기부를 한다는 걸 몰랐어요. 어느 날 딸이 지역신문에 난 기사를 뽑아오는 바람에 그때 집사람이나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된 거죠. 지금은 딸들도 제가 기부를 한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해요. 사실 저는 제가 기부를 한다는 게 알려지는 게 싫어요. 대단한 일도 아니고요. 제가 조금 있으니까 나눠 쓰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부도가 났을 때도 기부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좋은 일에 쓴 돈은 반드시 다시 들어오거든요. 부처님이 나한테 다시 돌려주신다는 믿음 같은 게 있어요.


대표님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내년쯤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이제는 쉬고 싶어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어요. 쉬면서 인생 후반기를 잘 계획해봐야죠. 다만 장학사업이나 불우이웃돕기는 죽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에요. 단 한 명이라도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쭉 돕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