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항대

저가 항공사 양날개가 무겁다

  • 2005-09-16

안전성 우려 ‘뜬소문’에 대형 항공사 견제까지… 지방공항 활성화 등 책임 무거워

‘기대 반 우려 반.’ 지난 8월 25일 제주에어가 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따내면서 제3 민간 항공사로 첫발을 내딛고 한성항공이 31일부터 청주-제주 노선에 비행기를 띄우면서 우리나라에도 저가 항공시대가 활짝 열렸다. 차별화된 서비스와 저렴한 요금으로 도전장을 낸 저가 항공사가 항공시장 변화를 주도하는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선 기존 항공료의 70%선에서 책정된 저렴한 요금이 매력적이다. 다른 운송수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 탓에 비행기는 엄두도 못내던 서민들을 공항 문턱까지 이끌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는 수사까지 동원되고 저가 항공사의 양 날개에 거는 기대도 점점 커진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저가 항공사가 가냘픈 숨을 할딱이고 있는 지방공항에 회생의 불을 지필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저런 환호와 칭송 한켠에서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저가 항공사들이 기존 항공사들이 보유한 터보팬(제트엔진) 방식이 아닌 터보프롭(제트엔진에 프로펠러를 장착한 형태) 항공기를 들여오면서 불거진 안전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잇달아 터진 외국 저가 항공사들의 사고 소식은 발목마저 잡을 기세다.

저가 항공사들은 이런 여론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제주에어와 한성항공의 경영진은 한결같이 “수익보다는 안전”이라며 불안여론 잠재우기에 나섰다. 한성항공은 정식 취항을 앞둔 8월 26일 시승행사를 가졌다. 정기항공운송사업자인 제주에어와는 ‘신분’이 다른 비정기항공운송사업자지만 저가 항공사로서는 한성항공이 첫 테이프를 끊는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수익보다는 안전’ 이유가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승행사는 한성항공의 주력기인 터보프롭 항공기(ATR72-200)의 안전성을 검증받는 자리가 됐다. 대체적인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한성항공을 이용하기 전에 보험을 3개나 들었다”고 귀띔한 한 관계자는 “소음은 기존 터보팬 항공기보다 다소 컸지만 견디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고 좌석공간이 넓어 오히려 쾌적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캐나다 봄바디어(Bombardier)가 제작한 터보프롭 기종(Dash 8-Q400)을 주력기로 결정한 제주에어 역시 안전에 관한 한 자신있다는 주장이다. Dash 8-Q400은 기종 선정을 위해 실시한 평가비행에서 소음이나 안락함 등 모든 항목에서 최고점을 받았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운항중 사고가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은 기종이라고 자랑했다. 제주에어 기획관리팀 김경춘 팀장은 “제작사의 직접적인 기술 지원을 받기 위해 새 비행기를 구입했다”면서 “초기 투자비 부담이 크지만 기술인력 현지 교육과 제작사의 전문인력 파견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 사후 관리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보프롭 항공기는 터보팬 항공기보다 이착륙 거리가 짧고 연비가 좋아 저가 항공사에 딱 맞는 기종으로 평가된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엔진이 꺼졌을 때도 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 비상착륙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저가 항공사가 대형 항공사보다 더 위험할 것이라는 소문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저가 항공사가 도입한 중소형 항공기는 구조적으로 대형 항공기보다 안전에 취약하다는 근거없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한성항공은 부랴부랴 터보프롭과 터보팬 항공기의 사고율을 비교하는 자료까지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인지 저가 항공사의 출현을 반기면서도 안전이 완벽하게 검증된 다음에나 이용을 고려하겠다는 ‘신중론’을 펴는 사람이 많다. 제주도가 고향인 양정석씨(35·대학원생)는 “요금이 싸다고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항공사를 이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저가 항공사들의 항공기 사고도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9월 6일 인도네시아 만달라 항공 소속 항공기가 추락한 것을 비롯해 이보다 앞선 8월 14일과 16일에는 키프로스의 헬리오스 항공과 콜롬비아의 웨스트 캐리비언 항공이 각각 사고를 냈다. 사고가 난 항공기들은 전부 터보프롭이 아닌 터보팬 기종으로 조종사의 훈련부족이나 낡은 기체, 정비소홀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됐다.

국내 저가 항공사 관계자들은 사고 기종이 터보프롭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사고를 일으킨 주체가 전부 저가 항공사였다는 점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항공교통연구실 김제철 연구위원은 “요즘 발생하는 항공 사고의 대부분은 기종 자체의 구조적인 결함보다는 기후나 정비불량 등 외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가동률을 높여 비용을 줄여야 하는 저가 항공사가 빡빡한 일정에 쫓겨 관리에 소홀해질 수 있는 개연성은 대형 항공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저가 항공사가 넘어야 할 벽은 많다. 우선 기존 항공사들과 한판 경쟁이 불가피하다. 현재 항공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반격은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노골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한성항공이 취항한 청주-제주 노선의 9월 한달간(추석 연휴 제외) 요금을 인터넷 예매에 한해 30% 할인하는 행사에 들어갔다. 대한항공도 15일까지 같은 노선에 대해 최대 25%까지 할인율을 높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저가 항공사 죽이기’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매년 여름 성수기가 끝나면 추석 전까지 항공료 할인행사를 해왔다”고 연막을 피우지만 사실상 기존 항공요금의 70%선으로 책정된 한성항공의 요금을 직접 겨냥한 제도나 마찬가지다.

항공사들의 경쟁은 이용객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대형 항공사들이 저가 항공사의 항공 요금에 근접하는 할인율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본격적인 가격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과다한 할인 경쟁은 빈약한 자본구조를 가진 저가 항공사에 큰 상처를 안겨 결국에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선-저가 항공사, 국제선-대형 항공사의 역할분담이 이상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한항공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국내선에서 본 손해는 6553억 원에 이른다. 국내선의 경우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탑승률은 72%지만 대한항공은 60%에도 못미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제주노선을 제외한 국내선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못이기는 척 국내선을 저가 항공사에 넘겨주는 게 대형 항공사의 체질 개선에는 훨씬 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이론일 뿐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어 성사 가능성은 낮다. 김제철 연구위원은 “당장 수익이 나는 노선은 서울(김포공항)을 중심으로 지방공항을 연결하는 노선, 특히 제주노선뿐이기 때문에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요 노선에서는 대형 항공사들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저가 항공사에 시장을 쉽게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저가 항공사의 경쟁자는 대형 항공사 뿐이 아니다. 고속철도(KTX)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다. 제주에어는 내년 6월 김포-제주를 시작으로 7월에는 김포-김해, 김포-양양에 취항하고 10월 김해-제주 노선에 항공기를 투입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김포-김해 노선은 KTX와 경쟁이 불가피하다.

군산을 거점으로 하는 전북항공도 KTX에 맞서야 한다. 내년 5월로 예정된 전북항공의 군산-서울 노선 항공료를 기존 요금의 70%(3만8500원)로 가정하면 익산-서울(용산) 간 KTX 요금(특실 3만5700원, 일반석 2만5500원)과 엇비슷한 수준이 된다. 가격 경쟁력을 갖는다고 해서 저가 항공사의 우세승을 점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공항은 대개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에 있고 수속을 위해 출발시간보다 1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 대기해야 하는 등 약점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가 항공사의 출현에 쾌재를 부르는 것은 이용객들만이 아니다. 지방공항들도 이제서야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됐다며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황금노선’인 김포-제주 노선을 제외하면 지방공항들이 누릴 파급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뭐래도 저가 항공사의 최대 수혜자는 제주공항이다. 제주공항은 모든 저가 항공사가 취항 목적지로 삼고 있어 내년 중반 이후에는 ‘항공 체증’을 겪을지도 모른다며 내심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제주공항과 더불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곳은 제주도다. 제주도는 저가 항공사의 취항이 관광 잠재수요를 폭발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에어에 50억 원을 투자하고 설립지원단을 구성해 가동하는 등 지역 저가 항공사 출범을 주도했다. 제주에어가 본격적인 운항을 시작하면 관광산업에서만 2015억 원의 매출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제주도는 전망한다. 제주도민의 편의를 위해 추진했던 지역 항공사가 제주도 관광산업을 한단계 끌어올릴 구원투수 노릇까지 하는 셈이다.

그러나 다른 지방공항과 지자체도 제주와 같은 호황을 누릴지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애초부터 과학적인 수요예측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지은 공항이 많은 탓이다.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교통물류학부 김병종 교수는 “지방공항 활성화는 저가 항공사의 취항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면서 “지방공항이 살아나려면 항공기 운항 횟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는데 아직 뚜렷한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가 항공사들의 인기가 지방공항에 활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위기를 전환한 것일 뿐 실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하루 2번 청주-제주 노선을 오가는 한성항공은 취항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평일에도 탑승률이 90%에 가깝고 주말엔 빈 좌석을 찾기 힘들 정도다. 추석연휴와 개천절 연휴 표도 이미 매진됐다. 그러나 한성항공의 인기는 기존 이용객들의 ‘쏠림현상’에 가깝다. 잠재 수요가 신규 수요로 전환되지 않아 고객을 뺏긴 대형 항공사들의 탑승률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존 항공사들은 취항 편수를 줄일 가능성도 있어 지방공항 활성화는 더 멀리 달아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한국공항공사 홍보실 최현철 과장은 “지금 상황만 놓고 봐서는 지방공항 활성화를 언급하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내년 6월 제주에어가 본격적으로 취항한 이후로 판단을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