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항대

[항공삽업]기우뚱 거리는 에어버스 무슨 일 있나?

  • 2006-11-01


기우뚱 거리는 에어버스 무슨 일 있나?

[조선일보 산업부기자]희뿌연 구름을 뚫고 지상 최대의 비행 물체가 떠올랐다. 승객 550명을 태울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여객기이자 ‘하늘의 호텔’ 애칭을 얻은 에어버스사의 야심작 A380. 이 여객기가 2005년 4월 27일 프랑스 남서부 도시 툴루즈에서 ‘처녀 비행’에 성공하자, 유럽 각국 정상 등 행사에 참가한 5만여명의 유명 인사들은 너도나도 찬사를 쏟아냈다.
유럽인들은 이날이 유럽 항공기 산업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 믿었다. 오랫동안 미국 보잉사에 ‘기술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총 110억유로(13조2000억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A380은 단순한 항공기가 아니었다. ‘젊은 미국’을 ‘늙은 유럽’이 앞질렀다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 후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현실은 잔혹하다. A380기는 이제 미국에 대한 기술 우위의 상징이 아닌, 유럽 항공기 산업 몰락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에어버스 모회사 EADS(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는 지난 3일 “A380 인도 시기를 1년 더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05년 6월과 지난 6월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인도(引渡) 연기 사태다. 이에 화가 난 EADS 최대 고객인 버진애틀랜틱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이 A380 주문 취소를 고려 중이다. 싱가포르항공과 호주의 콴타스항공 등은 에어버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는 등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EADS는 거듭되는 납기 연장으로 4년여 동안 48억유로(5조7400억원)의 재정적 타격을 입었다.

에어버스 위기의 근본 원인이 뭘까? 기술적인 문제가 첫째다. 에어버스는 고객들에게 비디오·전화 등 기기를 원하는 대로 설치하게끔 하는 ‘맞춤식 공정’을 택했다. 이로 인해 여객기마다 각각 서로 다른 케이블시스템을 갖게 돼 제작공정 표준화가 어려워 작업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 독일이 제조한 동체 뒷부분과 프랑스에서 만든 중간 부분을 조립하려 했으나 전선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정치적인 문제’다. EADS는 프랑스·독일·영국·스페인 등이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연합체. ‘국가간 이익’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A380 생산 라인이 국가별 지분에 따라 배분되는 기형구조를 띠게 된 것도 어쩌면 필연이었다. 생산공장 입지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 이전에 국가별 자존심을 먼저 따진다. A380의 각 부품, 모듈은 프랑스·독일·영국·스페인의 16개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EADS에는 ‘두 명의 회장’이 있다. 한 명은 프랑스인이고 다른 한 명은 독일인. 이들은 회사의 이윤도 생각하겠지만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일 취임 100일 만에 사퇴한 에어버스 전 CEO 크리스티앙 스트리프는 최근 프랑스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인사 구조로는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EADS와의 관계가 에어버스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에어버스를 하나의 독립된 ‘유럽판 다국적 기업’으로 바라봐야 함을 강조했다.
스트리프의 사퇴 후 에어버스는 EADS의 공동 CEO와 에어버스 공동 CEO를 겸임하고 있던 루이 갈루아의 ‘독자경영체제’로 전환했다. 갈루아는 “이제 ‘바로크 시대’에 등장할 법만한 복잡한 인사구조와 정치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은 끝났다”라고 선포했다. 유럽인들과 시장(市場)은 갈루아의 탈(脫)정치화와 과감한 구조조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