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항대

세계 항공시장 블록화의 상징, EU 클로즈

  • 2007-01-25

한·프랑스 항공회담 관련하여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EU 클로즈'다.

'EU 클로즈'의 정확한 명칭은 'EU 커뮤니티 클로즈(EU Community Clause: 유럽연합 역내조항 혹은 유럽연합 내 항공사의 복수항공사 지정 조항)'이다. EU 회원국은 자국 항공사 외에도 모든 EU 소속 회원국 항공사를 국적 항공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이 세계 항공업계에 대두된 것은 지난 2002년 11월 유럽연합 8개국과 미국 간의 항공자유화 협정 체결이다.

당시 유럽 사법재판소는 EU 회원국의 항공사가 자국 항공사만을 지정항공사로 하는 것은 EU 설립의 근간이 되는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로마조약 정신에 위배되므로 양국간 운항할 수 있는 항공사의 지정 요건을 EU 회원국 전체 항공사로 확대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EU는 EU를 대표하는 단일협상 주체를 통해 미국과 항공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프랑스 항공회담 결렬 주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독일, 프랑스와의 항공회담에서 두 나라가 동시에 EU 클로즈를 요구해 협상이 결렬되면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5일 간격으로 연이어 열린 독일, 프랑스와의 항공회담에서 이 두 나라는 똑같이 EU 클로즈 수용을 요구했다.

특히 프랑스 정부는 바로 전 회담이 있었던 2004년 처음으로 EU 클로즈 수용을 의제 중 하나로 제기했었으나, 2006년 당시에는 복수취항 허용의 조건으로 이를 전면에 내세워 우리 대표단을 당혹스럽게 했다.

결국 우리 정부(건교부)는 이 새로운 요구 조건의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협상이 결렬됐고, 프랑스 파리 취항으로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등 유럽 3대 거점 취항을 학수고대했던 아시아나항공의 거센 반발을 샀다.

건교부가 EU 클로즈 수용을 거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알려졌다. 하나는 EU 크로즈가 우리나라의 항공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항공법 제150조 4항에 따르면, '주식이나 지분의 과반수에 대한 소유권 또는 실질적인 지배권이 외국인 국제항공 운송 사업자가 국적을 가지는 국가 또는 국민에 속하지 아니하게 된 때' 건설교통부 장관은 외국인 국제항공 운송사업자의 운항 허가를 취소하거나 사업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협정 당사국 국적 항공사가 아니면 해당 노선에 취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의 해석이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만약 EU 클로즈를 받아들였다 사법부에서 이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게 되면 국제적 망신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다.

EU 클로즈 수용 불가의 다른 한 가지는, 유럽 항공사의 무차별적인 한국 시장 진출로 인한 자국항공사의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예컨대 프랑스, 독일과의 항공회담에서 EU 클로즈를 받아들였을 경우 한국과 프랑스의 대한항공과 에어프랑스, 한국과 독일의 경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루프트한자항공만이 취항하던 노선에 유럽 역내의 다른 국가 항공사들이 한-프랑스, 한-독일 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당시 건교부 항공정책에 관여하고 있던 한 항공 전문가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복수 취항 관철이었다고는 하나 이를 위해 EU 클로즈를 수용했다 오히려 자국 항공사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EU 크로즈, 장기적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 커 ]
이번 프랑스와의 항공회담에서 프랑스 정부가 또다시 EU 클로즈를 요구할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건교부 역시 예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당장 이번 회담에서 EU 클로즈를 수용한다고 해도 우리 항공사들에게는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EU 클로즈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양국간 공급횟수 내로 한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시장에 미칠 영향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홍석진 인천대 교수는 "독일, 프랑스와의 항공회담에서 봤듯 유럽 사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유럽 역내의 국가들이 제3국과 항공협정을 체결하는 경우 EU 클로즈 적용을 우선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

EU 크로즈 수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대한항공 관계자는 "양자간 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제3의 EU 회원국 항공사가 협정 당사국의 운수권을 활용해 운항할 수 있게 된다면, EU 회원국 항공사만 무임승차할 수 있게 돼 항공운송 시장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EU 측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이번 항공회담에서 EU 클로즈를 수용한다면, 향후 다른 EU 회원국과의 항공 회담시 도미노 현상을 초래해 EU 모든 회원국의 수용 요구에 동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고 주장했다.

건교부 항공당국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서 EU 클로즈를 수용할지 여부는 공식적으로 말하기 힘들다"고 전제하고, "다만 프랑스 측이 이를 다시 요구할 때의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국내 항공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신중한 접근 필요 ]
항공 전문가들 대부분은 EU 클로즈를 무조건 회피할 수만은 없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는 데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칠영 항공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에 기고한 'EU와의 항공협정을 서두를 필요 없다'라는 글을 통해 EU 클로즈를 '불평등 조항'이라고 규정하고, "국적에 따른 차별 조항 철폐를 통해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EU의 기본 의도가 자칫 건전한 시장질서 확립과 항공운송산업의 상호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일단 EU회원국과의 항공회담 일정을 전반적으로 재조정, 급하지 않은 EU 국가와의 회담은 시기를 과감하게 늦추고 우리 항공산업에 일방적 피해를 유발하는 조항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석진 인천대 교수는 “EU 클로즈의 적용은 어떤 면에서는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장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며, “다만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찾을 때까지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동북아 항공자유화를 가속화 위한 '타산지석' 삼아야 ]
EU 클로즈는 최근 세계 항공시장의 흐름인 권역별 통합 및 블록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EU의 항공시장 통합을 전후해 세계 항공운송시장은 NAFTA, 아세안, 아프리카, 남미 등 각 지역별로 블록화를 형성하고 지역 내 시장의 자유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타 권역 및 국가와의 항공운송 경쟁에서 공동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EU만이 역내 조항(EU 클로즈)을 적용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타 블록권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경우 2012년 항공운송시장을 완전통합하면서 EU 크로즈 같은 아세안 클로즈(ASEAN Community Clause)를 적용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향후 우리나라는 항공운송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이나 미얀마, 라오스 같은 나라와 1대 1로 항공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세안 10개국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따라서 EU 클로즈는 단순히 그 수용 여부를 떠나 향후 우리나라가 어떻게 블록화된 거대 항공시장과 경쟁해 나갈 것인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이 지적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3국의 항공자유화 및 항공시장 블록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는데 모아진다. EU 클로즈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홍석진 교수는 "권역별 항공시장 통합 및 블록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시점에서 유독 중국과 일본, 한국만이 전통적인 보호주의적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급속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동북아 3국의 항공운송시장 통합이 지연될 경우 이 지역 항공산업 경쟁력도 크게 상실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