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항대

[칼럼]동남권 신공항 건설, 수요예측 제대로 했나

  • 2009-09-02

아래칼럼은 2009년 8월 29일 중앙일보에 게재된  우리대학 항공경영대학 허희영학장의 칼럼입니다.

[칼럼]  동남아 신공항 건설, 수요예측 제대로 했나



 장사에는 흔히 목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손님이 쉽게 들러보는 길목을 잡아야 물건을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 예측이 중요한 이유다. 그 정확성이야말로 모든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종종 논란이 되는 국책사업들도 수요 예측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 여행객에게 얼마나 신속하고 편리한 운항스케줄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항공운송업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부산과 영남 지역에서는 신공항의 입지를 놓고 유치경쟁이 뜨겁다. 공항이 지니는 인적·물적 흡인력과 경제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최근까지 부산의 가덕도와 경남의 밀양이 후보지로 부각되면서 지역 간 갈등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 국책사업은 2003년 부산시가 김해공항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로 타당성 검토에 들어가 남부권역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김해공항의 수용력 부족과 안전성 문제, 남부권의 지역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2 허브공항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사업의 배경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경제성 측면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다. 우선 수요에 대한 예측에 의문이 든다. 현재 터미널 수용능력 1700만 명인 김해공항에는 연간 약 710만 명의 여객이 이용하고 있는데 수요 증가를 고려할 때 활주로의 안전성과 소음 등의 문제가 있어 야간운항이 가능한 대규모 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우선 수요 증가에 대한 가정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주요 간선도로망과 고속철도가 일부 국내 노선의 대체수단으로 자리 잡는 현실에서 보면, 향후 항공수요의 감소 요소들이 적지 않다. 내년 말 완공될 대구∼부산 간의 경부고속철은 서울역과 부산역을 2시간대로 오가면서 항공편의 이용시간에 근접, 울산과 김해공항의 여객 수요를 또 한 차례 잠식하게 된다. 국제노선의 여객 수요 증가 추세도 역시 지역별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부산권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일본 등 동남아 근거리 노선의 증가는 지속된다 하더라도 유럽과 미주 지역 등 장거리 노선에서 수요가 계속 늘어날지는 불확실하다.
 

 사업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2024년에 이르러 김해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인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예측 결과는 잠시 접어두고 현실적인 대안을 처음부터 차분히 모색하다 보면 10조원이 훨씬 넘는 천문학적 투자보다 오히려 쉽게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첵랍콕공항은 인접한 바닷가를 매립해서 활주로를 확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날로 첨단화되는 안전항행시스템의 구축도 안전성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공항 유치 경쟁보다는 오히려 기존 공항을 중심으로 저가항공 노선을 개발해 집중되는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동남권역에는 현재 김해공항 외에도 대구·포항·울산·사천 등 4개 공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이 끝난 지 오래인 울진공항은 개항조차 미뤄놓고 있다. 고객이 드나드는 길목이 바뀌었거나 처음부터 목을 잘못 잡은 결과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항공·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