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항대

[조선일보] 유통업체 갈등, 商圈 조사와 협의로 풀자

  • 2012-03-08

아래의 기사는 조선일보 3월 8일자에 실린 이승창 교수의 기고문입니다.


  지난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을 맞아 출현한 대형마트가 국내 소매시장 방어에 성공한 후 전국에 걸쳐 400개를 넘어선 2009년부터 정체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새로운 형태인 기업형수퍼마켓(SSM)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급속히 확대됨에 따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전통 중소 유통업체의 주변 1㎞에 보호막을 설치했고, 올해는 월 2회 휴무를 명령하는 규제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전통 중소 유통업체의 공간적·시간적 보호 장치가 갖추어지자 체인스토어협회에서 영업 자유권 침해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종사자 10인 이하 소상공인 비중이 2007년 49.4%로 EU의 28.9%보다 훨씬 높다. 또 서울시의 '2011년도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최대 고용 분야는 도소매업으로, 전체 종사자 449만명의 17.4%인 78만2000명이 유통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사업체의 감소 추세는 소매업과 분식점이 1·2위이다. 이들은 영세 골목의 5인 미만 자영업자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유통산업 문제를 바라볼 때는 기업 성과와 함께 고용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일본·서유럽 등 OECD 국가는 자영업자 구성비가 11~15%인데 우리나라는 35% 이상이다. 완전히 모습이 다른 사회이다. 영세 중소 유통업체는 유통법에서 정의한 전통시장 안에서만 장사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골목 시장이나 번화가 이면 도로에 있는 가게나 미니수퍼이다.

  지난 20년간 우리의 1인당 GDP는 2배 이상 늘었고 소매유통 품목 가짓수는 수십 배가 증가했다. 이제 골목의 소상인들을 적극적으로 업그레이드해나가기 위해서도 전통 중소 유통업체와 새로운 대형 유통업체의 조화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국의 주요 지역별로 시장을 세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새로운 도로명 주소 체계를 기본 틀로 하여 주요 상권(商圈)을 구분하는 고객 등고선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는 객관적 조사에 기초하여 고객을 흡인할 확률 분포도로 고객이 지리적으로 도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개별 시장별로 매장 총면적의 세부 정보를 가지고 새로운 기업형 유통업체의 매장 면적 규모나 개점 방식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역별로 유통업체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통 중소 유통업체들은 상권 협의체를 구성하고, 대형마트들은 새로운 시장 진출 시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서로 조정하고 전통업체 협의체와도 논의하는 것이다. 양쪽이 조화점을 찾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전통 중소 유통업체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고 현대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쇼핑 정보화 활용도가 세계 1위이다. 과거처럼 오프라인 유통점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 효과는 미미해졌다. 이제는 지역 유통업체들이 빠른 시장 선점 전략보다는 세분된 지역 상권별 협의체를 통해 전통 중소 유통업체와 새로운 중대형 유통업체들이 조화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역 상권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는 새로운 유통업체가 꾸준히 자생할 수 있고 향후 선진국과 맺은 FTA에 따른 시장 개방에 대비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정치적·법률적 대립만 계속하면 한쪽의 승리가 자칫 전체 유통시장의 실패로 이어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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