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 김경오 전 총재 방문

  • 2023-05-3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기록된 김경오 전 대한민국항공회 총재가 5월 25일 우리 대학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는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의원인 김선희 의원도 함께 했다. 허희영 총장과 항공운항학과 유병선 학과장이 김경오 전 총재를 반갑게 맞이했으며, 김경오 전 총재의 요청으로 특별히 우리 대학 항공운항학과 여학생 8명도 함께 했다. 

 


 

  김경오 전 총재를 설명할 때는 늘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1934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나 올해 한국 나이로 90세를 맞은 그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함께 창설된 최초의 여자항공대에 선발되면서 공군에 입대했다. 당시 전국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중 단 15명을 뽑았는데, 지원자만 8,200명이 넘었다. 시작은 화려했지만 입대 후 비행사가 되기까지의 길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지금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온갖 성차별을 받으며 남자들과 똑같이 고된 훈련을 받았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비행기에 태워주지 않았다. 동기들은 하나둘 결혼과 유학을 이유로 포기하고 군을 떠났지만 김경오 전 총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내 홀로 남아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가던 1952년 결국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김경오 전 총재가 우리 대학에 기증한 비행기
 

  전쟁이 끝나고 대위로 복무하던 1956년 김경오 전 총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미국에 유학을 가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라”는 지시를 듣고 군을 떠난다. 1958년 미국 길포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1963년 귀국 당시 미국에서 기증받은 비행기 1대를 들고 돌아오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이라 비행기 1대가 얼마나 비싼지도 몰랐지만 조국에 비행기를 꼭 가져가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김경오 전 총재는, 당시 활동하던 ‘국제여성조종사협회(나인티 나인스)’에 도움을 청해 미국 사람들이 백화점이나 마트에 물건을 사면 거스름돈 대신 받던 0.1센트짜리 쿠폰인 ‘그린 스탬프(Green Stamp)’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모금을 위해 여기저기 강연도 많이 다녔다. 덕분에 3년을 예상했던 3억 장 모으기가 3개월 만에 달성됐다. 그리고 비행기 제조사인 파이퍼로부터 경비행기인 ‘파이퍼 콜트(Piper Colt)’를 기증받게 됐다. 어렵게 구한 비행기는 후에 우리 대학(당시 국립항공대)에 기증되어 ‘한국항공대 조종과 학생들의 첫 훈련기’로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우리 대학 학보에는 1969년 10월 9일 김경오 여사가 기증한 비행기에 대한 기사가 상세하게 실려있다. 한국항공대와의 남다른 인연은 이때부터였다. 김경오 여사는 이날도 그때 비행기를 기증한 일을 “내 인생의 보람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이후 김경오 전 총재는 세계를 누비며 비행사로서, 여성운동가로서 활약했다. 대한민국항공회 총재와 국제항공연맹 부총재를 지내며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했고, 한국여성항공협회를 설립하고 40여 개 여성 단체가 회원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운동에도 힘썼다. 그런가 하면 남편인 이병모 전 동신유리 명예회장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좋은 엄마로서 두 딸을 잘 키워내기도 했다(두 딸 중 장녀가 EBS 영어 강사로 유명한 교육인 이보영이다). 이러한 그녀의 삶의 궤적은 지난해 발간된 자서전 <나는 매일 하늘을 품는다>에 고스란히 담겼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김금래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추천사와 함께 두 딸의 추천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김경오 전 총재가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 김경오 전 총재는 우리 대학 항공운항학과 여학생들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한 권씩 선물했다.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후배들을 만났다”며 학생들을 반긴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며 손수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우리 대학 항공운항학과 여학생이 47명(재적생 기준)이란 말에 “외국도 그렇게 많진 않은데 대단하다”며 놀라기도 했다. 김경오 전 총재는 “전 세계 여성 조종사는 아직 2만 명이 안 된다”며 “여성이 전투기 조종사 편대장까지 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여자들이 이렇게 조종을 잘한다는 걸 아직도 많이들 모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항공운항학과 여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을 남겼다.

 


 

  한편 이날은 국제존타(각 분야 직업인들이 모여 성차별 종식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쓰는 범세계적 봉사단체) 서울클럽을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김경오 전 총재가 만든 ‘존타 장학’의 수혜자인 이예송 학생(항공운항학과 20)이 함께 해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 존타 장학은 장차 여성 리더가 될 잠재력을 갖춘 여성 항공인에게 주어지는 장학으로 올해 처음 만들어졌다.